Your browser is not fully supported. Please upgrade your browser.

메인 콘텐츠로 건너뛰기
재단

톰 스위니(Thom Sweeney)

Photography: Jonathan Daniel Pryce


클래식 테일러링 르네상스에서 청년들이 맡고 있는 중요한 역할에 관해 의구심을 품은 사람이라면 다음 번에 메이페어에 가게 되면 현대적이고 어마어마하게 힙한 두 곳 중 하나인 톰 위데트와 루크 스위니(각 31세, 29세)의 이름을 걸고 있는 숍을 가 봐야 합니다. 그곳에선 두 청년이 그들의 나이를 의심케 하는 솜씨로 테일러의 마법을 엮어냅니다.

30대가 되기도 전에 런던 테일러링의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을 듣기 위해 울마크컴퍼니가 부르튼(Bruton Place)에 있는 그들의 두 아뜰리에 중 큰 곳에 들어섰을 때, 마침 적절하게도 롤링 스톤즈의 Time Is On My Side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젊음의 상징인 롤링 스톤즈가 테일러링의 힙함을 더욱 돋보이게 해 주기도 했습니다.

“톰과 저는 스피탈필즈(Spitalfields)의 테일러인 티모시 에베레스트(Timothy Everest)의 숍에서 동료 직원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스위니가 말합니다. 둘은 이제 벽에는 사슴의 머리가 걸려 있고, 한켠엔 위스키 바가 갖춰져 있으며, 한눈에 봐도 새빌 거리의 클래식한 실루엣에 젊은 감각을 끼얹는 장신구와 의상으로 가득한 랙이 있는, 어둑한 조명의 매장 한 가운데에서 커다란 가죽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있습니다. “저는 주문 제작 쪽 일을 맡게 됐었어요.” 그가 계속 이야기합니다. “반면에 19살이었던 톰은, 저는 22살이었고요, 이미 견습 커터로 비스포크 일을 하고 있었죠. 15년 전 일일 거예요."

Luke Sweeney and Thom Widdett. 

스위니의 삼촌은 의류 업계에 종사하고 있었고, 스위니도 이미 재단사와 코트 제작자들이 커팅룸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미래를 생각해보고 있었죠. “모두 지적이고 멋있어 보였죠. 저도 거기서 같이 일하고 싶었어요.”라고 그는 회상합니다. 하지만 위데트를 만나기 전까지는 남성복 제작에 대한 그의 열정은 부족했습니다. “당시에는 테일러링이 지금처럼 멋진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침체기를 지나고 있었죠. 캐주얼 프라이데이 같은 것 덕분에요. 이 업계에서 뭔가를 시작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일하기 좋은 곳이었죠. 격식이나 허세와는 거리가 있었어요. 저희에겐 훌륭한 훈련의 장이기도 했죠. 시작이 무척 좋았어요.”

“도매 쪽을 추진하려는 수많은 커터와 테일러가 업계를 떠나고 있었습니다.” 스위니가 이야기합니다. 테일러링 업계에서 점점 넓어져 가는 공백을 감지한 두 사람은 파트너십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저희만의 것을 시작할 때라는 느낌이 들었죠.” 위데트가 말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지향하는 바가 비슷했어요. 저는 비스포크 쪽, 루크는 주문 제작 쪽으로 각기 다른 것들을 이야기했음에도요. 저희는 주저하지 않았고, 상세하게 계획을 세웠죠. 모두 걸음마 단계였지만요. 그리고 고작 몇 명의 고객을 두고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위데트와 스위니는 이 소수의 훌륭한 고객들만을 데리고 스트랫포드에, 스위니가 “메이페어 북부의 낡고 오래된 집”이라고 이야기하는 첫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간판도 뭐도 없었어요. 한 평짜리 방에 커팅 보드 하나와 거울 하나만 놓고 작업했죠. 돌아보면 웃음이 나옵니다. 일찍이 저희를 방문한 고객 중에는 각 업계의 제법 높으신 분들, 주요 은행의 CEO, 미국 헤지펀드 매니저 등이 계셨습니다. 모두 멋진 차를 몰고 와서는 저희를 따라 계단을 올라서 이 먼지 쌓인 낡고 비좁은 방으로 들어왔죠.”

그럼에도 은발의 고위 인사들은 단념하지 않고 고객 기반을 다져 주었고, 두 사람은 그리 오래지 않아 2009년에 웨이하우스 가의 한적한 곳에, 새빌 거리에서 반 마일 이내 거리에 숍을 열고 작업실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숍은 지금도 이들의 다른 아뜰리에로 남아 있습니다(두 아뜰리에 중 작은 곳으로, 그곳의 위스키 바에는 암스테르담에서 가져온 소박한 브론즈 서빙 카트가 있습니다). 이곳은 3층 건물로, 테일러들은 저층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위데트와 스위니 두 사람은 매일 언제든 헤드 커터인 에이든 스위트를 만나 진행 중인 모든 옷에 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희는 시각적인 부분과 기술적인 부분 모두에서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곤 합니다. 숄더 라인이 어디가 되어야 하는지 등에 관해서요.” 위데트가 말합니다. “전반적인 창작 방향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죠.”

어떤 것일까요? “저희는 기본적으로 잉글랜드 클래식 테일러링 하우스입니다.” 위데트가 말합니다. "저희가 티모시 에베레스트에서 배운 것은 하이 암홀, 슬림 슬리브 등 고전적인 새빌 로 스타일의 컷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둘 다 처음부터 그것이 조금 뻣뻣하고, 약간 군대적이고, 어깨의 뻣뻣함이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죠. 외국 고객분들은 종종 이런 것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탈리아로부터 받은 영향을 많이 더해 실루엣을 약간 부드럽게 만들었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샤프한 모양은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저희는 소프트한 숄더의 재킷을 많이 만듭니다. 새빌 거리의 비스포크 하우스 대부분은 하지 않는 일이죠. 더 편하고 둥근 옷이지만 시각적으로는 정말 샤프합니다." 하지만 대단히 영국적인 디테일 한 가지는 애정을 담아 보존했습니다. “저희 로프 슬리브 헤드는 숄더 라인 끝에 멋진 데피니션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그 독특한 디테일이 대담하게 넓은 피크드 라펠과 감미로운 조화를 이룬다는 말에 동의하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남성들은 아마도 예전만큼 수트를 계속 구매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수트 구매에 대한 관심은 더 많은 정보의 탐색과 의견으로 이어집니다. 영감을 주는 것들과 정보가 더욱 많아졌으니까요.”

그들의 독특한 하우스 스타일은 대 히트를 거두었습니다(그들의 열렬한 팬 중에는 마이클 패스밴더와 데이비드 간디가 있습니다). 톰 스위니의 별은 그들 또래의(혹은 더 어린) 남자들이 입는 이에게 기품과 위엄을 주는 클래식 테일러링의 힘에 매력을 느끼는 한 계속해서 떠오를 것입니다. 또한 더욱 빠르게 발전하고 개발되는 소재의 영향으로 이제는 대중이 새로운 수요를 가지고 결과물을 소비합니다. “우리는 이제 기술적인 면 뿐 아니라 창의적인 면으로도 더욱 다양한 룩을 연출할 기회를 더 많이 주는 옷을 입습니다.” 스위니가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옷을 잘 입고 싶어 합니다.” 위데트가 결론을 내립니다. “남성들은 아마도 예전만큼 수트를 계속 구매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수트 구매에 대한 관심은 더 많은 정보의 탐색과 의견으로 이어집니다. 영감을 주는 것들과 정보가 더욱 많아졌으니까요. 한때는 잘 모르는 채로 테일러링 하우스에 들어가는 것이 주눅드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런던 테일러링의 새로운 문화인 오픈 도어 컬처는 오래도록 지속될 것입니다.

1-2 Weighhouse Street, Mayfair, London, W1K 5LR

스콧(Nick Scott): 리포트 (Robb Report)영국판의 에디터이며, 레이크 (The Rake)의 전 편집장, 지큐(GQ) 오스트레일리아의 부편집장이다. 그는 런던에 살며 에스콰이어(Esquire), 가디언(The Guardian), 파이낸셜타임스(The Financial Times )에 특집 기사를 실기도 했다.